정치 용어가 된 ‘소득주도성장’은 상상 혹은 몽상?
정치 용어가 된 ‘소득주도성장’은 상상 혹은 몽상?
  • 강북땡큐뉴스
  • 승인 2018.11.1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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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민 칼럼니스트

-아버지에게서 받은 100개의 편지

-이기적 국민

-디테일을 잡아야 성공이 보인다

이메일 : sangminusa6633@gmail.com

 

소득주도성장은 아무리 봐도 경제 용어다. 그런데 정치 용어가 됐다. 그것도 문재인 정부의 상징이자 정권 심장부에서 휘날리는 깃발로 변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설계자로 불리는 신임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는 어느 하나 분리할 수 없는 패키지다... 큰 틀의 방향에 대해서는 전혀 수정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소득주도성장의 깃발을 절대 내릴 수 없다는 세력과 반드시 깃발을 내려야한다는 세력 간의 힘겨루기는 충돌 수준이었다. 하지만 김수현 실장의 모습을 볼 때 앞으로는 전쟁 수준으로 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말은 어떻게 될까.

정치는 이념과 선전으로도 승리가 가능하다. 경제는 이념과 선전이 단기적으로 먹힐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경제는 현실과 팩트(사실)에 바탕을 둬야 성공한다. 아무리 번드르르한 구호도 현실에서 적용되지 못하거나 구현할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지상천국을 약속했던 사회주의 계획경제도 현실에서 구현이 불가능했기에 실패했다.

소득주도성장은 경제 문제다. 현실에서 구현될 수 없다면 이건 진실과 거짓보다 더 나쁜 헛소리(bullshit)’로 전락한다. 진실과 거짓은 판명할 근거라도 있지만, 헛소리는 근거조차 없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의 이론적 배경은 폴란드 출신의 경제학자인 미하우 칼레츠키(Michal Kalecki)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마르크스 경제학에 매력을 느끼면서 경제를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 구조로 파악하게 된다. 기업의 이윤을 노동자에게 더 유리하게 배분하면 노동자 임금(소득)이 늘어나 소비·투자·생산이 연쇄반응으로 일어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본 것. 좌파의 눈으로 분배의 필요성을 크게 고민한 결과였는데, 관련 논문은 1930년대에 나왔다.

칼레츠키의 시각을 원용해 2012년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나온 보고서가 임금주도성장 : 개념, 이론, 정책이라는 논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고려하는 대상은 임금을 받는 사람이지, 일자리가 없는 실업자나 본인이 임금을 주는 자영업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임금주도성장의(wage-led growth)의 임금(wage)은 한국에 들어와 소득(income)으로 슬쩍 교체됐다. 그 본질을 몰랐던 자영업자들과 아르바이트생 등 비정규직들은 마치 자신도 소득주도성장의 수혜자로 착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득주도성장(실질적으로 임금주도성장)의 치명적인 약점은 국제적인 공조가 이뤄져야 성공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생긴다는 것. 우리가 임금을 올린 만큼 다른 나라도 노동자의 몫을 챙겨주기 위해 한국과 공조를 맞춰 임금을 올려줘야 한다는 얘기다. ILO의 관련 논문도 모든 나라가 동시에 친노동 분배정책을 실행하면 (다른 나라까지 포함해) 경제활동을 촉진한다.”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협력하기도 불가능한 세상에서 전 세계가 서로 공조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결국 한국만 용감하게 임금을 올리면 기업들의 생산 비용이 높아지고 이는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한국은 정책적으로 경쟁력 측면에서 국제적인 왕따이자 외톨이가 되는 셈이고, 경제는 저성장-고실업의 참사를 입게 된다.

소득주도성장의 사례로 1914년 포드를 꼽는 학자나 정치인들도 있다. 당시 포드는 일당 2.34달러를 두 배 이상인 5달러로 올렸다. 포드가 성공한 것은 임금인상에 따른 비용 상승을 철저한 내부 규율과 설비 투자를 통한 생산성 향상을 통해 상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포드는 기업차원의 소득주도성장 실험으로는 거의 유일한 사례이고, 당시 경쟁사를 압도하는 주도적 위치에 있었다. (지금은 생산성을 단기간에 높이기도 어렵고, 도요타 벤츠 현대차 등과 같은 글로벌 경쟁업체도 많다) 포드가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임금을 올린다면 시장을 모두 경쟁자들에게 내놓게 된다는 게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 지적이었다. 한국은 국제시장에서 정해진 가격을 따라가는 나라이지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나라도 아니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소개하면 소득주도성장과 비슷한 사례로 토마 피게티의 글로벌 자본세라는 게 있다. 피게티는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을 통해 일약 스타가 된 경제학자인데, 그는 자본소득의 불평등이 부의 세습사회, 불평등 사회를 더욱 가속화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건 주장이 소득세나 상속세의 누진율 강화와 부유세 도입 등인데 고소득자에게 최고 80%의 소득세를 부과해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세계 각국이 금융자료 협력을 통해 글로벌 자본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순자산 100만 유로 이하는 0%, 100~500만 유로는 1%, 500만 유로 이상은 2%라는 수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피게티의 불평등 해소강연은 늘 인기였고, 한국에서도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현실 정치에서 구현된 경우는 아직까지 없는 것 같다. 비슷한 사례로 보자면 프랑스가 있는데,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은 2012년 세율 75%에 이르는 부유세를 도입했다가 부유층의 프랑스 탈출과 경제 추락이라는 대형 악재를 맞자 2년 만에 폐지했다. 글로벌 자본세의 경우 지금도 조세 피난처가 많은 상황에서 과연 실효가 있을 것이며, 세계 각국이 금융자료를 공유하는 착한 정치를 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정책으로 구현될 여지가 전혀 없다고 봐야 한다.

경제 정책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경제 현장에서 먹히면 좋은 정책이고, 경제 현장을 망치면 나쁜 정책이다. 경제 현장에서 전혀 통하지 않는 정책은 그저 헛소리일 뿐인데, 현실 지향적인 관료보다는 이념이나 이론 지향적인 교수나 학자, 정치인 등에서 그런 주장이 나오고 그게 이상주의를 지향하는 일반 대중에게 잘 먹힌다.

사람들의 생각은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 중 상상과 몽상이 있다. 상상(想像)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것으로 창조력의 원천이 된다. 몽상((夢想)은 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뜻한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도박꾼이나 투기꾼, 게임 속의 영웅으로 착각하는 게임중독자 등이 몽상가라고 할 수 있다. 몽상가들이 쫓는 대상은 허상(虛像)이자 신기루일 뿐이므로, 몽상은 파멸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상상과 몽상은 비슷하게 들리지만, 결과는 천당과 지옥으로 갈린다. 소득주도성장의 주창자들은 상상가일까 몽상가일까.

미국 소설가인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신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은 당신이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럴 리 없다고 당신이 확신하는 것이다. (모르는 것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모르면서) 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곤경에 빠진다)” 잘못된 정책과 제도는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데, 어찌됐든 소득주도성장의 깃발이 대한민국에서 경제 침몰과 민생 몰락의 상징이 되는 일만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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