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영장’과 무임승차
‘만물의 영장’과 무임승차
  • 강북땡큐뉴스
  • 승인 2018.10.17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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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민 sangminusa6633@gmail.com

아버지에게서 받은 100개의 편지

이기적 국민

디테일을 잡아야 성공이 보인다

어린 시절 즐겨 보았던 <타잔>이라는 영화에 침팬지가 나온다. 이름이 치타로 무려 80년을 살다가 지난 201180살이라는 나이로 숨을 거뒀다. 사람의 일생과 맞먹는 장수를 누린 셈이다.

침팬지는 사람과 가장 비슷한 영장류다. 사람과 침팬지 유전자의 99% 가량이 일치한다고 한다. 침팬지는 주로 초식인데 가끔 사냥에 나서기도 한다. 침팬지들도 사람처럼 사냥을 할 때 무리를 지어 협업을 한다.

그런데 사냥감을 나눌 때 처분 과정이 인간과 다르다. 사람들은 사냥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과 성과를 나눈다. 먹거리를 나눠야 다음에도 동료의 협조의 구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나와 남을 동등하게 보고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 3~5세의 아이들도 이러한 선택을 한다.

침팬지는 사람과 달리 사냥감을 먼저 잡는 개체가 먹이를 독차지하려 든다. 주변에 있는 참가자들은 떡고물이나마 얻으려고 하니 금방 무질서 상황이 된다. 사냥을 함께 할 수는 있지만, 먹거리를 공정하기 나누는 개념이 없다는 얘기다.

나무에서 과일을 딸 때도 인간과 침팬지는 달리 행동한다. 인간은 나뭇가지를 흔드는 사람, 사다리를 받치는 사람, 떨어진 과일을 줍는 사람으로 업무를 나눠 수행한다. 수확한 과일은 참가자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게 원칙이다. 반면 침팬지는 떨어진 과일을 먼저 움켜쥐고 먹는 게 우선이지 분업을 한다는 개념조차 없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사람과 침팬지를 나누는 가장 큰 특징으로 무임승차(free riding)’를 꼽을 수 있다. 사람들이 사냥을 할 때 아무 도움을 주지 않는 사람은 먹거리 배분에서 제외했다. 성경에 나온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표현도 결국 무임승차를 경계한 금언으로 볼 수 있다.

무임승차의 개념을 학문적으로 정리한 인물로 맨커 올슨(Mancur Olson)이 꼽힌다. 그에 따르면 인간사회는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타인에게 의존하는 시스템이다. 구성원의 공헌이 강할수록 사회는 더 발전하게 된다. 문제는 일부 사람들이 비용은 지불하지 않으면서 그 편익만을 누리고자 무임승차를 한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무임승차를 하면 그 사회는 충분한 재화와 서비스를 누릴 수 없게 되는데, 대표적인 게 바로 병역과 세금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대부분 병역을 기피하면 국가 안보는 엉망이 되고, 세금 내기를 회피하면 나라 살림을 할 수 없게 된다.

역사를 보면 무임승차사례가 수없이 나타난다.

로마제국은 병역 회피와 포퓰리즘 때문에 망했다. 로마가 한창 발전할 때 로마 시민은 군인으로 복무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러다가 영토가 넓어지고 부유한 삶을 누리면서 점차 용병들에게 국방을 맡겼고, 결국 게르만 용병들이 로마를 차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로마는 안노나(Annona)라는 식량분배제도를 통해 서민들에게 밀을 무료 또는 아주 낮은 가격으로 공급했다. 안노나를 위해 수입된 밀을 양은 로마 수입량의 15~50% 정도에 달했는데, 이러한 복지정책은 막대한 재정부담이 됐다. 많은 로마 시민들은 안노나를 통해 무임승차를 했고, 로마는 재정 적자에 시달리면서 나라로서 건강성을 잃어갔다.

현대에 들어와 무임승차의 표본이 된 게 공산주의다. 대표적인 공산주의의 실패 사례로 중국의 인민공사가 꼽힌다. 중국 공산당은 인민들에게 개인의 인센티브가 아니라 공익을 위해 일하라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개인의 노력과 보상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없었고, 열심히 일하든 꾸벅꾸벅 졸든 임금은 비슷비슷했다. “종을 아무리 치고 호루라기를 불어도 밭으로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는 증언도 있다. 공산주의를 채택한 옛 동유럽에서 우리는 일하는 척하고 그들(공산당)은 우리에게 임금을 주는 척한다.”는 게 중국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그런데도 중국의 내면을 모르는 서양의 지식인들은 인민공사를 인간적인 노동 현장으로 묘사했다. ‘이웃에 대한 배려가 시장의 탐욕을 대체한다.’는 취지에 공감한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많이 듣던 얘기가 아닌가?) 좌파 경제학자들이 많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저명한 경제학자 존 로빈슨은 인민에게 이기주의 타파와 특권 폐지를 호소한 결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했다고 예찬론을 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1978년 농업생산성은 공산당이 중국을 접수하기 직전인 1948년보다 더 낮았다. 비참한 현실을 보다 못한 덩샤오핑은 1978년 중국에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인민공사가 유발한 무임승차를 차근차근 없앴고, 중국은 그때부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사회에 기여하는 것 이상으로 자기 몫을 챙기는 게 넒의 의미의 무임승차이며, 현대에 와서는 이를 포퓰리즘이라고 불린다. 포퓰리즘을 펼친 나라는 예외 없이 국가적 재난을 겪었는데, 포퓰리즘 적폐가 쌓인 대표적인 국가로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브라질 그리스 등이 꼽힌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면서 무임승차를 부추기는 정치는 미래의 비극을 초래한다. 이러한 비극을 막으려면 멀리 보는 정치 못지않게 국가의 선심성 지출에 과감히 안돼요하고 말을 하는 건강한 국민의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는 인기영합 정책과 선심성 세금 지출에 박수를 치는 국민들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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